2024年 09月13日
大宰府アカデミー・令和編 第17講 中野等先生への質問及び回答(Q&A)を掲載しました。
2024年 09月01日
欢迎光临大宰府展示馆(大宰府展示館 簡体案内)
欢迎光临大宰府展示馆 大宰府展示館へようこそ
太宰府在12世纪以前被称为“大宰府”,大宰府展示馆致力于向来访者传递大宰府的古老故事。
1300年前,大宰府是九州的行政中枢,同时也是一大政治、宗教和文化中心,更是日本通向世界之门。由于日本位于古代连接东西方的贸易路线“丝绸之路”的东端,流经大宰府的物资和文化培养了当时在日本确属罕见的国际主义、高素养以及学术性精神。
大宰府展示馆着重介绍太宰府的悠久历史。在这里,参观者可以学习当时人们如何利用本地区的自然地形进行防御,通过观赏如宫殿般精美的官署立体实景模型感受其独特的中国元素,了解人们穿着的颜色与他们的社会等级的关联,发现深受本地百姓喜爱的各种珍奇美食。除此之外,展厅一角的说明板介绍了持续至今的发掘工作,长期的考古调研,揭示了昔日大宰府的种种旧貌。
太宰府与2019年启用的日本新年号有着密切的联系,“令和”二字源于公元8世纪在大宰府举行的一场梅花宴,宴上所创诗集的序文中写道:于时初春令月,气淑风和。
请尽情享受古老的大宰府之旅吧!
① 大宰府立体实景模型:自然防御 大宰府 再現ジオラマ 自然防衛
太宰府在12世纪以前被称为“大宰府”,公元7世纪至12世纪,大宰府是九州政治和文化中心。大宰府的选址充分利用了本地的地形特点,从这个立体实景模型可以看出,周围的山脉和地形巧妙地形成一个天然的瓶颈,为抵御入侵者提供了坚固的防线。
由于毗邻亚洲大陆,大宰府成为了重要的外交枢纽,它是外国使团进入博多湾后的第一个停靠港。不过,因大宰府临海,它也容易受到外国的攻击。
7世纪的亚洲大陆政治动荡,663年兵败于中国唐朝的日本对外防卫能力相当薄弱。于是,朝廷于664年下令修建“水城”,这道防御性城墙伴随着绵延超过1.2公里的护城河,可以阻挡来自今福冈市所在的沿海平原的潜在性攻击。为了进一步保卫城市,本地还修建了数处堡垒要塞,位于四王寺山顶的大野城就是其中之一。这些防御设施的遗迹至今依然可见。
当时大宰府的面积约为2平方公里,正方形的城市呈棋盘式布局,属古代东亚城市风格。来自九州各地的人们,包括高阶官僚、商人,甚至外国使节都频繁往来于此地。
12世纪以后,城市景观慢慢发生了变化,但大宰府身为政治中心一直繁荣到了14世纪。
② 大宰府官署模型 大宰府政庁の模型
这是再现了8世纪时大宰府官署的模型。12世纪以前,太宰府被称为“大宰府”,当时丝绸之路贸易发达,大宰府与中国和亚洲大陆关系紧密。从建筑的美感和对称性等中国宫殿的特征中就可以看出,当时的官署深受中国影响。
这些建筑遵循中国风水学和古代哲学理论建造。正殿(行政大厅)坐北朝南,吸收阳气,行向上之运。而四王寺山山脚的地理位置则为其提供了自然防御屏障。
官署屋顶上覆盖着“鬼瓦”,这种瓦片类似中国古建筑的兽面瓦当,用以驱邪。这里展出的鬼瓦出土于大宰府,张开的大嘴和凸出的眼睛强调了恶鬼愤怒的表情。大厅内的地面和楼梯使用了装饰有花草图案的方形和三角形瓷砖。
官署遗址就在展厅外,虽然如今只剩下基石,但它曾经庞大而宏伟,与太宰府这座繁荣的国际大都市相得益彰。
③ 大宰府的颜色与等级制度 大宰府の色と位階
在古代日本,颜色具有强烈的象征意义。政府官员须根据他们的官阶穿着特定颜色的衣服。如展示中的仿真人物一样,地方最高长官“帅”穿浅紫色官服,而其他官员也依照自己的身份地位穿着某种颜色。当时等级极其重要,和穿着指定颜色的权利一样,等级决定了在官僚机构中从事特定工作的资格。直到今天,我们仍然可以在日本的神社中看到这种等级制度的痕迹,比如在附近的太宰府天满宫和灶门神社,不同等级的神官就身穿不同颜色的衣服。
腰带也具有重要意义。展柜左侧的华丽腰带与低级官员佩戴的朴素腰带形成了鲜明对比。不过遗憾的是,这些腰带都系在衣服里面,并不显眼。
这些扁平的木片叫“木简”,它用途多样,比如可记录课税货物的信息。木简也很环保,当不再需要上面的信息时,只要用锋利的小刀削去表面的文字就能重复利用。在那个纸张昂贵且稀缺的年代,这种做法颇有价值。
在展品的中央,可以看到一枚砚台和一块墨条复制品,船形墨条是将松木烟灰和熬制的动物胶揉在一起制成。当时的文人墨客可能就是使用这样的书写工具来记录《万叶集》中的一些和歌(日本传统的诗歌形式)。《万叶集》是一部具有重要文化价值的和歌选集,书中和歌来自日本各地,其中也有一些是在大宰府(今太宰府,12世纪以前的名称)创作的诗歌。
④公元8世纪的大宰府立体实景模型 8世紀の大宰府のジオラマ
公元8世纪时大宰府(今太宰府,12世纪以前的名称)十分繁荣,这个立体实景模型再现了当时紧凑的规划布局。大宰府的字面意思是“传达天皇命令的伟大官衙”,意味着它是重要的对外贸易枢纽、军事要塞和政府行政中枢。然而,大宰府并非只局限于政治层面,它在日本文化和宗教方面也发挥着重要作用。
模型的最右端是观世音寺,这个庞大的建筑群是当时九州首屈一指的佛寺。这里曾有一座雄伟的五层佛塔,但后来与其他众多建筑一起毁于自然灾害。如今寺内只剩下一些重建的殿阁。
与寺庙毗邻的一所学校为来自九州北部的男孩提供教育,学生们毕业后都留在九州,成为本地政府官员。
大宰府官署位于四王寺山山脚下,它得益于山体的天然防御性,并被由防御墙和护城河组成的“水城”保护。官署是一组宏伟的朱红色宫殿式建筑群,以平城京(今奈良)的宫廷与殿宇为蓝本。立体实景模型展示了8世纪时大宰府的格局,但持续至今的发掘工作,依然不断地在这座古都的规模和悠久历史方面为我们带来新的发现。
⑤古代大宰府的发掘 古代大宰府の発掘
大宰府(今太宰府,12世纪以前的名称)不仅是举足轻重的行政和外交中心,由于跟亚洲大陆的文化联系也十分密切,所以它还是新思想和文化发展的交流中心。然而,随着12世纪国家控制权落入武士和大名(大领主)手中,这座城市的影响力逐渐式微。考古学家在过去50年的发掘中,逐渐明确了古代大宰府的规模。挖掘的现场和航拍照片,更是将昔日大宰府的城市设计和布局清晰地展示在人们面前。
遗址发掘结束后,遗存被填平并用草覆盖进行保护,同时打上标记以表明地下埋藏物。这种发掘后的处理方式既保护了自然景观,又彰显了本地历史。也有一些遗存特意不予复原裸露在外,例如这条排水沟,其历史可以追溯到公元8世纪早期,大宰府展示馆的外墙就是围绕着它修建的。
中央的大石块是建筑物支柱的础石,它并非出土于此,很可能是在附近发现后被移动到这里展示。
展示馆与本地社区密切合作,鼓励本地居民参与志愿者项目,帮助保护并宣传太宰府丰富的遗产及其在日本历史上所起到的重大作用。
⑥梅花宴 梅花の宴
这一处立体实景模型,展现了公元730年在大宰府(今太宰府,12世纪以前的名称)最高长官——大伴旅人(665-731;身着紫衣者)将军官邸举行的“梅花宴”。这些在当时十分珍稀的梅花树来自中国,政府官员们聚集在树下食馔饮酒,即兴赋诗。
公元7世纪至12世纪是大宰府历史上的黄金时代。由于大宰府毗邻亚洲大陆,与其他王国交往频繁,大宰府的官员们对外国文化拥有深度的理解力和极高的鉴赏力。他们不仅擅长外交和军事,还同样精通诗词歌赋。参加梅花宴的人都能即兴吟歌作诗,并且取材广泛,从梅花、天气到宴会气氛,可谓包罗万象。宴会上的官方记录员则将他们创作吟诵的和歌(日本传统的诗歌形式)逐一记录存档。
模型中的精美博多人偶陶器采用福冈传统工艺烧制。如果仔细观察,还能看到酒杯中和来宾头发上的梅花。请留意官员们身着不同颜色的服装,这表明了他们的身份。
这次聚会在日本文化中具有深远的意义。《万叶集》(成书于8世纪、现存最古老的日本诗集)中收录了32首在此次宴会上创作的和歌。当今的日本政府和历史学家正是从书中这些和歌序言里的汉字中受到启发,将最新的年号命名为“令和”(2019- )。
⑦ 大宰府的饮食文化 大宰府の食文化
“木简”,是了解公元8世纪时大宰府(今太宰府,12世纪以前的名称)饮食文化的宝贵依据。从大宰府和日本古都奈良出土的木简上所刻信息,可以深入了解当时人们的消费内容。
在730年初的那场“梅花宴”上,可能就有与这里的展示相类似的菜肴。左侧是为高阶官员准备的丰富宴席,右侧则是为低阶人群提供的较为简单的饭菜。
为重要贵宾准备的菜单包括野鸡干、鲑鱼干、香鱼寿司、清酒蒸鲍鱼、各类时令腌菜、鲷鱼和鱿鱼等生鱼片,以及“草饼”(用糯米和艾叶制成的传统春季甜食)。如今,日本餐厅仍提供类似定食。
在宴席场景的立体实景模型中,可以看到一些客人举着酒杯。与现在樱花时节的赏樱宴会一样,日本清酒在席间扮演着重要角色,甚至还能激发人们创作和歌(日本传统的诗歌形式)的灵感。
令和——新时代的开始 令和-時代の始まり
在日本,每当新天皇继位时就会诞生一个新年号,标志着一个新时代的开启。令和时代始于2019年5月,而这个年号便源自一场著名的“梅花宴”,立体实景模型展示了当时的场景。宴会上创作的32首和歌(日本传统的诗歌形式)以及一篇描述性的序言都收录在《万叶集》(诞生于8世纪、现存最古老的日本诗集)之中。年号的汉字“令”“和”均取自序言。“令”的意思有些含糊,通常指命令,也有美好之意,但在《万叶集》中,它的意思更接近吉祥。“和”的意思则很明确,表示宁静或和谐。这篇序言从这句开始:
于时初春令月,气淑风和……
(初春の令月にして、気淑く風和ぎ・・・)
毫无疑问,这一句不仅描写梅花盛开的景致,也表现了作者眼中当时生机盎然的现实社会风貌。更重要的是,这首诗创作于大宰府(今太宰府,12世纪以前的名称)这个以欢迎外来文化而闻名的地区。“令和”二字的含义为日本社会及其未来提供了积极视角,暗示着乐观主义、强大的国际关系、全球化和欣然接受不同文化的精神。
この英語解説文は観光庁の地域観光資源の多言語解説整備支援事業で作成しました。
This English-language text was created by the Japan Tourism Agency.
2024年 09月01日
다자이후 전시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大宰府展示館 ハングル案内)
다자이후 전시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大宰府展示館へようこそ
다자이후 전시관은 다자이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시설입니다.
1300년 전, 다자이후는 규슈의 행정상 중심지에 위치했으며 정치와 종교, 문화의 일대 거점이었습니다. 다자이후는 일본과 외국을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동서를 잇는 고대 교역로였던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 위치했던 일본은 다자이후를 통해 흘러가는 문화와 물자를 통해 당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국제성과 지적 교양, 학문에 대한 정신을 양성했습니다.
다자이후 전시관은 다자이후의 다채로운 역사에 대해 소개합니다. 방위를 목적으로 다자이후 지역의 자연 지형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궁전과 같은 정부기관의 정밀한 입체 모형에는 중국 특유의 영향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사람들이 입던 옷의 색상이 어째서 그들의 신분과 직업에 관련되어 있었는지, 당시의 다자이후에서 어째서 그렇게 다양한 요리를 먹을 수 있었는지 등 다자이후 전시관을 관람하면 당시의 다양한 일들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사진 갤러리에서는 다자이후의 수많은 옛 영광들을 설명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발굴 조사에 주목합니다.
다자이후는 2019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연호인 레이와(令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레이와라는 연호는 8세기에 다자이후에서 거행되었던 ‘매화 연회’에서 유래했습니다.
다자이후 전시관에서 고대 다자이후로 떠나는 여행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① 다자이후 디오라마: 자연 지형을 활용한 방위 大宰府 再現ジオラマ 自然防衛
다자이후는 7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 규슈의 실질적인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도시가 있는 장소는 지역의 지형적인 특성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디오라마는 어떻게 주변의 산들과 풍경이 자연의 험난한 길을 형성하고, 침입자들로부터 제대로 방어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자이후는 아시아 대륙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특징에 따라 외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하카타만에 입항한 외국 사절단이 가장 먼저 거쳐가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바다와 가까워 다자이후가 외국의 공격에 따른 영향을 받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7세기의 아시아 대륙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일본은 663년에 당나라에 패함에 따라 해외의 위협에 취약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조정은 664년에 미즈키(水城)라고 불리는 해자가 설치된 방어벽을 건설하도록 명했습니다. 미즈키는 동서로 산에 둘러싸여 평야가 가장 좁아지는 위치에 1.2km가 넘는 길이로 축조되었으며, 지금의 후쿠오카시가 자리한 해안 평야에서의 잠재적인 공격을 저지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방어를 위해 시오지야마 산 정상의 오노성을 포함한 여러 요새가 지어졌습니다. 지금도 이들 방어 시설의 옛 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자이후의 도시 면적은 약 2km2로 정방위에 기반하여 격자 모양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고대 동아시아 도시의 특징입니다. 규슈 각지에서 이곳으로 모인 사람들과 고급 관리, 상인, 그리고 외국 사절단이 빈번하게 왕래했습니다.
12세기 이후 도시의 모습은 변화했지만, 이곳은 14세기까지 정치의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했습니다.
② 다자이후 정청의 모형 大宰府政庁の模型
이 모형은 실크로드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중국 및 아시아 대륙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8세기에 다자이후 정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중국 궁전의 일반적인 특징인 아름다운 건축물과 좌우 대칭 등 중국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계는 오행사상(만물은 목, 화, 토, 금, 수 5개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상)과 풍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중심이 되는 정전(正殿)은 태양의 기운을 받고자 남향으로 건설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오지야마 산의 기슭에 위치하여 자연 지형을 통한 방위 기능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건물 지붕에는 악귀를 퇴치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요괴의 얼굴을 장식한 귀와(鬼瓦)가 사용되었습니다. 전시된 귀와는 다자이후에서 발굴된 것으로 벌린 입과 튀어나온 눈은 분노에 가득 찬 요괴의 표정을 한층 더 강조합니다. 건물 내부에는 꽃과 식물 무늬로 장식된 사각형 또는 삼각형의 타일이 바닥과 계단에 사용되었습니다.
전시관과 가까운 곳에 과거 정청 시설이 있었던 장소가 있습니다. 현재는 초석만 남아 있으나, 그 옛날 크게 번영했던 국제도시 다자이후와 걸맞은 드넓고 위풍당당한 모습의 시설이었습니다.
③ 다자이후에서의 색상과 위계 大宰府の色と位階
색상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했던 고대 일본에서 관리들은 위계에 따라 정해진 색상의 의복을 착용했습니다. 소치(장관)는 전시된 인형과 같은 색상의 옅은 보라색의 의복을 입었습니다. 다른 관리들도 신분적 지위에 따라 특정 색상의 의복을 착용했습니다. 고대 다자이후에서 위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으며, 관리 제도에서 특정 일에 대한 취임 자격을 규정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일본 국내의 신사에서는 이러한 위계 제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가까운 다자이후 덴만구 및 가마도 신사에서도 신관은 지위에 따른 특정 색상의 의복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허리띠에도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전시 케이스의 왼쪽에 있는 허리띠 장식은 지위가 낮은 관리가 착용했던 평범한 허리띠와는 대조적인 형태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허리띠는 의복 안에 착용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었습니다.
평평한 모양의 나무 판자는 목간(木簡)입니다. 목간은 과세품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수정이 필요한 경우나 재사용할 경우에는 글자가 적힌 판의 표면을 날카로운 칼로 얇게 깎아내 판자를 다시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목간은 친환경적이면서도 종이가 값비싸고 공급량이 적은 물품이었던 당시에는 널리 사용된 도구였습니다.
정중앙에 전시된 물품은 벼루와 송연으로 만들어진 먹의 복원품입니다. 송연은 아교와 함께 반죽하여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형(舟形)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일본 각지에서 모은 와카(일본 전통 정형시)를 수록하고 8세기에 완성된,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와카집 ‘만엽집(萬葉集)’에는 다자이후에서 읊은 시도 포함되어 있는데, 당시 문장가는 만엽집에서 볼 수 있는 와카의 일부를 기록하고자 이 같은 문방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④ 8세기 다자이후의 디오라마 8世紀の大宰府のジオラマ
이 입체 모형은 작은 규모에도 번영을 이루었던 다자이후의 도시가 8세기에는 어떤 모습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묘사합니다. 다자이후는 천황 아래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중요한 관공서였으며, 도시는 매우 중요한 정치 행정 및 외교, 교역의 중심지이자 군사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자이후는 정치에만 관련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문화와 종교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입체 모형의 오른쪽 끝에는 당시 규슈의 주요 불교 사원이자 거대한 복합 시설이었던 간제온지 사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내에는 과거 위용을 자랑하던 오층탑이 세워져 있지만, 자연재해로 인해 다른 수많은 건물과 함께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재건된 일부 건물만이 남아 있습니다.
간제온지 사원과 인접했던 학교에서는 규슈 북부에서 모여든 남성들을 교육했으며, 학생들은 이후 규슈에 머물면서 고관이 되었습니다.
다자이후 정청은 시오지야마 산 기슭에 위치하며 산으로 이루어진 자연 방어와 방어용 벽과 해자로 조성된 미즈키를 통해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다자이후 정청은 주홍빛으로 칠한 건물들로 구성된 궁전 시설이었으며, 당시 도읍이었던 헤이조쿄(지금의 나라현에 위치)에 있었던 궁정과 궁전을 모델로 삼아 지어졌습니다. 이 입체 모형을 통해 8세기 다자이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발굴 조사는 고대 도시의 규모와 역사를 추가적으로 밝혀내고 있습니다.
⑤ 고대 다자이후를 발굴 古代大宰府を再訪
다자이후는 과거 행정과 외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심지였습니다. 이 지역은 아시아 대륙과의 문화적인 교류가 활발했으며 새로운 사상 및 문화 발전의 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12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지배권이 무사와 다이묘(영주)들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다자이후의 영향력은 약해졌습니다. 지난 50년간 발굴 조사를 통해 고대 다자이후의 규모가 밝혀졌으며, 고고학의 발굴 장소 및 항공 사진을 보면 다자이후의 과거 설계 및 구성을 더욱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발굴 조사 후에는 유구를 보호하고자 땅을 메우고 풀로 덮은 후, 아래에 유구가 있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이처럼 발굴 조사 후에 실시되는 과정에는 자연 경관 보전과 이 곳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는 두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유구 중 일부는 이 배수 도랑처럼 의도적인 형태로 남겨둡니다. 이 도랑은 8세기 초기의 것으로 생각되며, 도랑이 있었던 본래의 장소에 전시관을 세워 보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앙의 커다란 바위는 건물의 기둥을 지지했던 초석입니다. 이 바위는 현재의 상태로 출토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발견한 것을 옮겨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자이후의 다채로운 유산과 일본의 역사 속 다자이후의 역할에 관한 정보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활동에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 프로젝트에는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⑥ 매화 연회 梅花と詩
이 입체 모형은 730년에 다자이후의 소치(장관)였던 오토모 다비토(자주색 의복을 착용)의 공관에서 열린 ‘매화 연회’를 재현했습니다. 관리들은 중국에서 가져와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매화나무 아래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 즉흥 와카(일본 전통 정형시)를 읊었습니다.
7세기부터 12세기는 다자이후의 역사 중에서도 황금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 다자이후의 관리들은 지리적으로 아시아 대륙과 가깝고 여러 왕조들과 빈번하게 교류했던 경험을 통해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습니다. 이들은 외교나 무예에 능숙했으며 뛰어난 와카 시인으로서도 기대받는 존재였습니다. 매화 연회의 참가자는 자신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매화꽃의 개화, 날씨, 연회의 분위기를 주제 삼아 즉흥적으로 와카를 읊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기록자는 참가자가 읊은 와카를 기록했습니다.
이 입체 모형에 사용된 하카타 인형은 후쿠오카의 독창적이고 뛰어난 전통 공예품입니다. 가까이서 살펴보면 술잔 속과 참가자의 머리에 매화 꽃이 보입니다. 관리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다른 색상의 의복을 입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연회는 일본 문화에 있어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연회에서 읊었던 32수의 와카는 만엽집(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 와카집, 8세기 성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연호인 레이와(2019-)는 지금의 일본 정부와 역사가가 만엽집에 수록된 와카의 서문에 있는 한자에서 착안하여 지어졌습니다.
⑦ 다자이후의 식문화 大宰府の食文化
목간(木簡)을 통해 8세기 다자이후의 식문화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다자이후와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에서 발굴된 목간에 적혀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당시에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요리와 유사한 것들이 730년 정월 초하루에 열린 ‘매화 연회’에서 제공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관들에게는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 호화스러운 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내빈에게 제공된 음식으로는 꿩과 연어를 말린 음식과 은어 초밥, 전복술찜, 다양한 야채절임, 도미나 오징어 및 기타 회를 비롯해 찹쌀과 쑥의 잎을 빻아 만든 봄철 전통 과자인 쑥떡 등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음식들은 오늘날에도 일본의 음식점(일본 요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연회의 입체 모형에서는 여러 명의 참가자가 술잔을 치켜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만개한 벚꽃을 즐기는 꽃구경 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술은 연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당시 와카를 짓는 참가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레이와-새로운 시대의 시작 「令和」-時代の始まり
일본에서는 천황이 즉위할 때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합니다. 레이와 시대는 2019년 5월에 시작되었으며, 이름은 이 입체 모형에서 묘사되는 유명한 ‘매화 연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연회에서 읊었던 32수의 와카(일본 전통 정형시)는 자세한 내용을 만엽집(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 고전 와카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호명의 두 한자 ‘레이(令, 하여금 령/영)’와 ‘와(和, 화할 화)’는 만엽집의 서문에서 따왔습니다. 두 번째 글자인 ‘와(和)’의 의미는 명확한데, ‘고요함’ 또는 ‘조화’를 의미합니다. 첫 번째 글자인 ‘레이(令)’는 현대 일본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지휘’ 또는 ‘명령’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답다’ 또는 ‘좋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한자를 따온 만엽집의 서문에서는 ‘아름답다’라는 의미와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카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초춘영월, 기숙풍화(初春令月, 氣淑風和)
(초봄의 영(令)월, 공기는 맑고 바람은 평온하다.)
이 구절은 분명 매화꽃의 개화뿐 아니라 서문의 작가가 바라본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담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 와카가 다양한 외국 문화를 받아들였던 다자이후에서 지어졌다는 사실도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레이와의 글자에는 낙관적인 사조(思潮)와 견고한 국제 관계, 국제화, 그리고 외국 문화에 대한 경의를 내포하고 있는 일본 사회와 앞으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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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年 09月0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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歡迎光臨大宰府展示館 大宰府展示館へようこそ
太宰府在12世紀以前被稱為「大宰府」,本展示館主要介紹大宰府的古老故事。
1300年前,大宰府是九州的行政中樞,同時也是一大政治、宗教和文化中心,更是日本通向世界之門。由於日本位於古代連接東西方的貿易路線「絲綢之路」的東端,流經大宰府的物資和文化培養了當時在日本確屬罕見的國際主義、高素養以及學術性精神。
大宰府展示館著重介紹太宰府的悠久歷史。在這裡,遊客可以看到當時人們是如何利用當地自然地形防禦;觀賞如宮殿般精美的官署立體實景模型,感受獨特的中國元素;了解人們衣著顏色與社會等級的關係;發現深受當地老百姓喜愛的各種珍奇美食。除此之外,展廳一角的說明板介紹了持續至今的發掘工作,長期的考古調查,揭示了昔日大宰府的種種舊貌。
太宰府與2019年啟用的日本新年號也有著密切關聯,「令和」二字源於西元8世紀在大宰府舉行的一場梅花宴,宴上所創詩集的序文中寫道:於時初春令月,氣淑風和。
請盡情享受古老的大宰府之旅吧!
① 大宰府立體實景模型:自然防禦 大宰府 再現ジオラマ 自然防衛
太宰府在12世紀以前被稱為「大宰府」,西元7世紀至12世紀,大宰府是九州政治和文化中心。從這個立體實景模型可以看出,大宰府的選址充分利用了本地的地形特點,周圍的山脈和地形巧妙地形成一個天然防線,可有效抵禦入侵者。
由於毗鄰亞洲大陸,大宰府是外國使團進入博多灣後的第一個停靠港,自然就成為了重要的外交樞紐。不過,因為臨海,它也容易受到來自國外的攻擊。
7世紀的亞洲大陸政治動盪,663年兵敗於中國唐朝的日本對外防衛能力相當薄弱。於是,政府於664年下令修建「水城」,這道防禦性城牆伴隨著綿延超過1.2公里的護城河,可以阻擋來自今福岡市所在的沿海平原的潛在性攻擊。為了進一步保衛城市,當地還修建了數處堡壘要塞,位於四王寺山頂的大野城就是其中之一,今天仍可以看到這些防禦工事的遺跡。
當時大宰府是一座正方形的城市,呈棋盤式布局,面積約2平方公里,屬古代東亞城市風格。來自九州各地的人們,包括高階官僚、商賈,甚至外國使節都頻繁往來於此。
12世紀以後,城市景觀慢慢發生了變化,但作為政治中心的大宰府一直繁榮到了14世紀。
② 大宰府官署模型 大宰府政庁の模型
這是再現了8世紀時大宰府官署的模型。12世紀以前,太宰府被稱為「大宰府」,當時絲綢之路貿易發達,大宰府與中國和亞洲大陸聯繫緊密。從建築的美感和對稱性等中國宮殿的特徵中就可以看出,當時的官署深受中國影響。
這些建築遵循中國風水學和古代哲學理論建造。正殿(行政大廳)坐北朝南,吸收陽氣,行向上之運。四王寺山山腳的地理位置則提供了自然防禦屏障。
官署屋頂上覆蓋著「鬼瓦」,用以驅邪,與中國古建築的獸面瓦當相似。這裡展出的鬼瓦出土於大宰府,張開的大嘴和凸出的眼睛強調了惡鬼憤怒的表情。大廳內的地面和樓梯使用了裝飾有花草圖案的方形和三角形瓷磚。
官署遺址就在展廳外,它曾經龐大而宏偉,與太宰府這座繁華的國際大都市相得益彰,可惜如今只剩下了基石。
③ 大宰府的顏色與等級制度 大宰府の色と位階
在古代日本,政府官員根據他們的官階穿著特定顏色的衣服,顏色具有強烈的象徵意義。如同展示中的模擬人物一樣,地方最高長官「帥」穿淺紫色官服,而其他官員也依照自己的身份地位穿著某種顏色。當時等級極其重要,和穿著指定顏色的權利一樣,等級決定了在官僚機構中從事特定工作的資格。直到今天,我們仍然可以在日本的神社中看到這種等級制度的痕跡,比如在附近的太宰府天滿宮和灶門神社,不同等級的神官就身穿不同顏色的衣服。
腰帶也具有重要意義。展櫃左側的華麗腰帶與職等較低的官員佩戴的樸素腰帶形成了鮮明對比。不過遺憾的是,這些腰帶都係在衣服裡面,並不顯眼。
這些扁平的木片是「木簡」,有多種用途,例如用來記錄課稅貨物的資訊。木簡也很環保,當不再需要上面的資訊時,只要用鋒利的小刀削去表面的文字就能重複利用。在紙張昂貴且稀缺的年代,這種做法頗有價值。
在展品的中央,可以看到一枚硯臺和一塊墨條的複製品。這塊船形墨是把松木煙灰和熬製的動物膠揉在一起製成的。當時的文人墨客可能就使用這樣的書寫工具來記錄《萬葉集》中的一些和歌(日本傳統的詩歌形式)。《萬葉集》是一部具有重要文化價值的和歌選集,書中和歌來自日本各地,其中也有一些是在大宰府(今太宰府,12世紀以前的名稱)創作的詩歌。
④ 西元8世紀的大宰府立體實景模型 8世紀の大宰府のジオラマ
這個立體實景模型再現了西元8世紀時大宰府(今太宰府,12世紀以前的名稱)的布局結構,緊湊而繁榮。大宰府的字面意思是「傳達天皇命令的偉大官衙」,意味著它是重要的對外貿易樞紐、軍事要塞和政府行政中樞。然而,大宰府並非只專注政治,它在日本文化和宗教方面也發揮著重要作用。
模型的最右端這片龐大的建築群,名為觀世音寺,是當時九州首屈一指的佛寺。這裡曾有一座雄偉的五層佛塔,但後來與其他許多建築一起毀於自然災害。如今寺內只剩下一些重建的殿閣。
與寺廟毗鄰的一所學校為來自九州北部的男孩提供教育,學生們畢業後都留在九州,成為當地政府官員。
大宰府官署位於四王寺山山腳下,它得益於山體的天然防禦性,並被由防禦牆和護城河組成的「水城」保護。官署是一組宏偉的朱紅色宮殿式建築群,以平城京(今奈良)的宮廷與殿宇為藍圖。立體實景模型展示了8世紀時大宰府的布局結構,但持續至今的發掘工作,依然不斷在這座古都的規模和悠久歷史方面為我們帶來新的發現。
⑤ 古代大宰府的發掘 古代大宰府の発掘
大宰府(今太宰府,12世紀以前的名稱)不僅是舉足輕重的行政和外交中心,由於它和亞洲大陸的文化聯繫十分密切,所以也是新思想和文化發展的交流中心。然而,隨著12世紀國家控制權落入武士和大名(大領主)手中,這座城市的影響力逐漸式微。考古學家在過去50年的發掘中,逐漸明確了古代大宰府的規模。挖掘的現場和航拍照片,更是將昔日大宰府的城市設計和布局結構清晰地展示在人們面前。
遺址發掘結束後,遺存被填平並用草覆蓋進行保護,同時打上標記以表明地下埋藏物。這種發掘後的處理方式既保護了自然景觀,又彰顯了在地歷史。有一些考古發現被特地保留並顯露出來以供展示,例如這條排水溝,其歷史可以追溯到西元8世紀早期,大宰府展示館的外牆就是圍繞著它修建的。
中央的大石塊是建築物支柱的礎石,它並非出土於此,很可能是在附近發現後被移動到這裡展示。
博物館與本地社區密切合作,鼓勵本地居民參與志工活動,幫助保護並宣傳太宰府豐富的人文遺產,及其在日本歷史上扮演的重要角色。
⑥ 梅花宴 梅花の宴
這一處立體實景模型,展現了西元730年在大宰府(今太宰府,12世紀以前的名稱)最高長官——大伴旅人(665-731;身著紫衣者)將軍官邸舉行的「梅花宴」。這些梅花樹自中國引進,在當時十分珍貴,政府官員們聚在樹下食饌飲酒,即興賦詩。
西元7世紀至12世紀是大宰府歷史上的黃金時代。由於毗鄰亞洲大陸,與其他王國交往頻繁,大宰府的官員們不僅擅長外交和軍事,還同樣精通詩詞歌賦,對外國文化也有深度的理解和極高的鑒賞力。參加梅花宴的人都不但能即興吟歌作詩,並且創作題材廣泛,從梅花、天氣到宴會氣氛,可謂包羅萬象。宴會上的官方記錄員則將他們創作的和歌(日本傳統的詩歌形式)逐一記錄存檔。
模型中的精美的博多人偶陶器,採用福岡傳統工藝燒製。如果仔細觀察,還能看到酒杯中和來賓頭髮上的梅花。請留意官員們身著不同顏色的服裝,這表明了他們的身份。
這次聚會在日本文化中具有深遠的意義。《萬葉集》(成書於8世紀、現存最古老的日本詩集)中收錄了32首在此次宴會上創作的和歌。當今的日本政府和歷史學家正是從《萬葉集》中這些和歌序言裡的漢字中受到啟發,將最新的年號命名為「令和」(2019- )。
⑦ 大宰府的飲食文化 大宰府の食文化
「木簡」,是了解西元8世紀的大宰府(今太宰府,12世紀以前的名稱)飲食文化的寶貴依據,從大宰府和日本古都奈良出土的木簡上所刻的資訊,可以深入了解當時人們的消費內容。
在730年初的那場「梅花宴」上,可能就有與這裡的展示相類似的菜餚。左側是為高階官員準備的豐富宴席,右側則是為低階人群提供的簡單飯菜。
為重要貴賓準備的菜單包括野雞乾和鮭魚乾、香魚壽司、清酒蒸鮑魚、各類時令醃菜、鯛魚和魷魚等生魚片,以及「草餅」(一種用糯米和艾葉製成的傳統春季甜食)。直到現在,日本餐廳仍提供類似定食。
在宴席場景的立體實景模型中,一些客人舉著酒杯。和現在櫻花時節的賞櫻宴會一樣,日本清酒在席間扮演著重要角色,甚至還能激發人們創作和歌(日本傳統的詩歌形式)的靈感。
令和——新時代的開始 令和-時代の始まり
在日本,新天皇繼位時會誕生一個新年號,這標誌著進入了一個新時代。始於2019年5月的令和時代,其年號便是源自一場著名的「梅花宴」,立體實景模型就展示了當時的場景。宴會上創作的32首和歌(日本傳統的詩歌形式)以及一篇描述性的序言都收錄在《萬葉集》(誕生於8世紀、現存最古老的日本詩集)之中。年號的漢字「令」、「和」均取自序言。「令」的意思有些含糊,通常指命令,也有美好之意,但在《萬葉集》中,它的意思更接近吉祥。「和」的意思則很明確,表示寧靜或和諧。這篇序言從這句開始:
於時初春令月,氣淑風和……
(初春の令月にして、気淑く風和ぎ・・・)
這一句不僅描寫梅花盛開的景致,也表現了作者眼中當時生機盎然的現實社會風貌。更重要的是,這首詩創作於大宰府(今太宰府,12世紀以前的名稱)這個以歡迎外來文化而聞名的地方。「令和」二字的含義為日本社會及其未來提供了積極視角,暗示著樂觀主義、強大的國際關係、全球化和欣然接受不同文化的精神。
この英語解説文は観光庁の地域観光資源の多言語解説整備支援事業で作成しました。
This English-language text was created by the Japan Tourism Agency.
2024年 08月16日
大宰府アカデミー・令和編 第16講 岡寺良先生への質問及び回答(Q&A)を掲載しました。
2024年 06月12日
令和5年度 利用者アンケートの結果について
公益財団法人古都大宰府保存協会では、管理運営を行っている大宰府展示館及び水城館において、利用者の満足度などを把握する目的で毎年1回利用者アンケートを実施しています。今後もよりご満足いただける施設を目指してまいります。
令和5年度のアンケート結果は、以下のとおりです。
大宰府展示館 アンケート結果はこちら
水城館 アンケート結果はこちら
2023年 03月13日
大宰府展示館 入館に際してのお願い
-当館の取り組み―
● 来館者の皆様に安心してご観覧いただけるよう、新型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感染拡大防止のため、消毒液の設置や換気などの安全対策を実施します。
-以下のお客様につきましては、ご来館をお控えいただきますようお願いいたします―
● 体調がすぐれないお客様
● 発熱や風邪、臭覚、味覚障害の障害があるお客様
-来館されるお客様へのお願い―
● マスク着用のご協力をお願いします。
また、咳エチケットの励行、入館時の手の消毒など、来館者の皆様がお互い安心してご観覧いただけるよう、ご理解、ご協力をお願いいたします。
● 館内での密集をさけるため、入館者数、入館時間を制限する場合がありますので、ご了承ください。
● 観覧される際は、他のお客様との距離をあけてご見学ください。
● 混雑状況によってはご入館をお待ちいただく場合がございます。ご理解とご協力をお願いいたします。
皆様のご来館を心よりお待ちしております。
2023年 03月13日
水城館 入館に際してのお願い
-当館の取り組み―
● 来館者の皆様に安心してご観覧いただけるよう、新型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感染拡大防止のため、消毒液の設置や換気などの安全対策を実施します。
-以下のお客様につきましては、ご来館をお控えいただきますようお願いいたします―
● 体調がすぐれないお客様
● 発熱や風邪、臭覚、味覚障害の障害があるお客様
-来館されるお客様へのお願い―
● マスク着用のご協力をお願いします。
また、咳エチケットの励行、入館時の手の消毒など、来館者の皆様がお互い安心してご観覧いただけるよう、ご理解、ご協力をお願いいたします。
● 館内での密集をさけるため、入館者数、入館時間を制限する場合がありますので、ご了承ください。
● 観覧される際は、他のお客様との距離をあけてご見学ください。
● 混雑状況によってはご入館をお待ちいただく場合がございます。ご理解とご協力をお願いいたします。
2022年 12月28日
おうちで「だざいふチャレンジ」 太宰府検定を解いてみませんか‼
公益財団法人である古都大宰府保存協会は、大宰府の歴史や文化を広く発信していくことを事業の1つとしておりますが、新型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に伴う緊急事態宣言が発令され外出自粛要請の中、自宅で太宰府の歴史や文化などに親しみながらチャレンジできることを何かご提案できないか、という思いから様々な取り組みを行っています。
今回、古都大宰府保存協会が事務局を務め7年間にわたって開催しました「太宰府検定」の問題を期間限定で再公開いたします。是非ご自宅で時間がある中、太宰府の様々な問題にチャレンジしてみてはいかがでしょうか?
●「太宰府検定」とは?
「太宰府検定」は太宰府の悠久の歴史や文化を広く全国に発信し、また地域・世代を越えた交流の場を設け、地域への愛着を深めると同時に、次世代の育成、地域の活性化を図ること等を目的に、2012年から2018年まで計7回を開催いたしました。
「太宰府検定」は初級・中級・上級の3つの級があり、初級・中級は全100問で4択形式、上級は全50問で語句の解答・設問の穴埋め・短文論述などの記述式となっています。
合格基準は各級とも正解率70%(70点)以上です。是非合格を目指してチャレンジください‼
出題は太宰府の歴史・文化をはじめ自然・観光・暮らしなど様々なジャンルに及び、内容については森弘子先生監修・(財)古都大宰府保存協会編集の公式テキストである『太宰府紀行』を中心として、回によっては設定されたテーマから一定割合が出題されています。
「太宰府検定」を通じて皆様が太宰府をもっと知り、より楽しみ、新型コロナウイルスが終息しましたら太宰府の各地へ訪れていただくキッカケとなりましたら幸いです。
参考テキスト 海鳥社『太宰府紀行』
「太宰府検定」出題データ
・問題データはA4サイズのPDF形式(約500~800KB)となっております。
それぞれの文字をクリックしますと該当のデータへと移動いたしますので、ダウンロードや印刷などにてご利用ください。
★第1回「太宰府検定」(2012年)
★第2回「太宰府検定」(2013年)
★第3回「太宰府検定」(2014年)
☆第1回・第2回・第3回データはコチラ↓をクリックください
https://www.kotodazaifu.net/notice/kentei/852
★第4回「太宰府検定」(2015年) テーマ出題「大野城(四王寺山)」
★第5回「太宰府検定」(2016年) テーマ出題「日本遺産」
☆第4回・第5回データはコチラ↓をクリックください
https://www.kotodazaifu.net/notice/kentei/851
★第6回「太宰府検定」(2017年) テーマ出題「さいふまいり」
★第7回「太宰府検定」(2018年) テーマ出題「大宰府史跡発掘50年」
☆第6回・第7回データはコチラ↓をクリックください
https://www.kotodazaifu.net/notice/kentei/850
〔更新履歴〕
・2020年5月8日 公開開始
・2020年5月9日 データ更新
・2020年5月14日 データ更新
・2020年5月28日 データ更新・レイアウト変更
2022年 11月16日
「大宰府アカデミー・令和編」の申込受付が始まりました。
公益財団法人古都大宰府保存協会は、令和6(2024)年設立50周年を迎えます。
設立50周年を記念し、令和5(2023)年4月より、最新の大宰府研究成果を多くの方々に広く知っていただくために、連続講座「大宰府アカデミー・令和編」を開講いたします。
お申込みはこちらから↓
https://www.kotodazaifu.net/dazaifu-academy/